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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헤누기 2015. 5. 26. 00:39

 

우리나라 3대읍성으로( 전북고창의 고창읍성. 순천 낙안읍성 그리고 해미읍성)

현존 읍성중 가장 보전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미읍성은 병인양요의 계기가 되었던  1866년(고종 3년, 丙寅年)에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江華島)를 침범한 사건으로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말미암아 천주교 신앙선조들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던 순교자들의 처형에 가장 큰
비운의 성지이기도 하다.
1963년 사작 제11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미읍성 진남문

 

해미읍성의 남문이며 정문인 진남문

남문 동문,서문이 있는데 그중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이 진남문이다

 

 

읍성 남문을 들어서면 예전 순교자의 피비린내 나던 흔적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정원처럼 가꾸어 역사의 흔적을 복원해 놓았다

 

 

성내의 주막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전통시장 거리로 조성되 있다

 

 

성을 순찰하던 기마병과 말은 없고 자전거가 대신 임무를 맡았다

 

 

민가가옥. 옥사등 여러 가옥들과 일상 생활의 도구들로 정비되어져 있다

 

 

 

 

 

 

 

 

호야나무

 

천주교 신앙선조들의 형벌의 도구이자 박해의 상징으로

이 나무 가지에에 목을 매달고 처형되었으며 이때 순교자는 1,000 ~ 2,000명으로 추산

조선 전체의 순교자가 8,000명으로 이보다더 많은 순교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인지 교수목이라기도 하는 이 나무는 회화나무로 이 지역의 발음으로 호야나무로 부르게 된 것이

호야나무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350년 이상을 이 자라리를 지켜온 호야나무는 우리나라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증거로 남아 있다.

 

 

호서좌영

 

 

동헌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의 집무실로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을 했던 곳

 

 

 

내아로 가는 쪽문(내아 : 일종의 지방수령의 관사)

 

 

내아(內衙)2000년11월 복원

 

 

객사(客舍) 1997년 7월 복원

 

 

 

활터

 

 

성벽의 누각

 

 

진남문 축조에에 대한 글이 붉은색으로

황명홍치 4년 신해로 새겨져 있다( 황명홍치 : 아마 명나라 연혁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

 

 

2014년 8월17일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문 기념으로 거리명을 『교황 프란치스코순례길』로 명명 되었다

 

 

요기를 하기위해 식당을 찾던 중, 정말 콩알만한 카페가 신기해서